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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05 누벨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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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얄롱얄롱 2012. 5. 5. 01:03

누벨바그 [ Nouvelle Vague ]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1962년 절정에 이른 프랑스의 영화 운동. 누벨바그는 ‘새로운 물결(New Wave)’이란 뜻이다. 주제와 기술상의 혁신을 추구했던 이 경향은 무너져가는 프랑스 영화 산업에 대한 반동으로 형성됐다. 이 운동의 원동력은 소그룹 영화 마니아들로부터 나왔는데, 그들은 대부분 프랑스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에 글을 기고하며 경력을 시작했으며, 특히 잡지 발행인이었던 비평가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의 영화 비평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프랑수아 트뤼포(Francois Truffaut), 클로드 샤브롤(Claude Chabrol),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 에릭 로메르(Eric Rohmer), 자크 리베트(Jacques Rivette) 등은 기존의 안이한 영화 관습에 대항하는 글을 썼고, 좀 더 개인적인 방식의 영화 제작, 즉 감독의 개인적인 영감과 비전을 투여하는 방식과 스타일을 논설했다. 최초의 누벨바그 영화는 샤브롤의 〈미남 세르주〉(Le Beau Serge, 1958)이다. 그의 두 번째 영화 〈사촌들〉(Les Cousins, 1959)은 아이러니가 넘치는 보헤미안 기질의 파리 학생들 이야기를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친밀감과 객관적인 카메라 거리를 조화시키면서 기존 형식을 무시하는 태도로 대담한 내용을 찍는 미덕을 보여 줬다. 누벨바그는 자전적 영화로서 한 소외된 소년의 초상을 그린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Les Quatre Cents Coups, 1959), 2차 세계대전의 기억에 침식되는 한 일본인 남자와 프랑스 여인 간의 사랑을 그린 알랭 레네(Alain Resnais)의 〈히로시마 내사랑〉(Hiroshima Mon Amour, 1959), 당돌하며 희극적인 방식으로 미국 갱 영화에 경의를 표한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 1960)로 그 절정에 이르렀다. 이 영화에서 고다르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관습을 조롱하는 듯한 태도로 제멋대로 진행되는 줄거리와 등장인물의 행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서 비약과 생략적인 편집 태도를 취했다.


누벨바그 작가들은 저마다 각각의 접근 방식과 감수성을 갖고 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내보인다. 



[1] 인물은 당돌하고 비전통적이며 대체로 감상을 배제하여 다룬다.

[2] 구성은 느슨하고 사실적이며 혁신적이다. 

[3] 경량 장비의 사용. 소형 촬영기와 장비를 사용하여 우연적이고 사실적인 영상과 음향을 얻어낸다. 

[4] 현지 촬영과 야외 촬영의 선호. 

[5] 생략 편집을 활용하여 이미지들의 연관, 이미지와 음향, 그리고 매체 자체에 대한 주의를 상기시킨다. 

[6] 영화적 공간과 시간에 관한 실험. 

[7] 초창기 영화들에 대한 암시를 통해 전통의 지속과 단절을 짚어내고 특정 작품이 품고 있는 영화적 자의식에 관해 언급하며 특정 감독이나 영화에 경의를 표한다. 

[8] 인간과 우주의 부조리함에 대한 실존주의적 감각을 갖고 있다.



이런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의 상이점도 명료하다. 낭만적 경향의 트뤼포, 정치적 급진주의 성향의 고다르, 레네의 구조주의적 실험, 로메르의 도덕적인 감수성, 리베트 영화의 연극성, 루이 말(Louis Malle)의 절충주의적 성향 등이 그것이다. 누벨바그 영화 중 역대 비평가들로부터 높이 평가받는 작품으로는 트뤼포의 〈피아니스트를 쏴라〉(Tirez sur le Pianiste, 1960)와 〈쥘과 짐〉(Jules et Jim, 1962),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Vivre Sa Vie, 1962), 레네의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L’Annee Derniere a Marienbad, 1961) 등이다. 이 감독들은 모두 자신만의 길을 갔지만 누벨바그는 세계 여러 나라의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운동의 영향으로 미국과 유럽 영화는 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나 작가주의 영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