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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05 유디트 헤르만,「소냐」
유디트 헤르만,「소냐」 / 책갈피
posted by 얄롱얄롱 2012. 5. 5. 00:45

그녀를 내 집과 아틀리에에 들어오게 하고, 식탁이나 서류 무더기 사이에 앉게 하고, 사진을 현상하거나 작은 스케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소냐에게는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난 몰랐다. 그녀는 그녀 방식대로 나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아틀리에에 들어섰고, 박물관 관람객처럼 경외심을 가지고 내 그림을 보았고, 식탁에 앉을 때는 마치 알현(謁見)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 당시 내게는 모든 것이 의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그녀가 내게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주관이 강하고 고집이 셌기 때문에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도 않았다. 나는 소냐가 내 삶에 갈고리처럼 걸려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밤들 동안 그녀는 작고 피곤한, 그리고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듯 자기만의 특이한 방법으로 말상대가 되어주는, 내 곁에 앉아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내가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는 기분을 갖게 해주는 아이였다.

 

(중략)

 

그 뒤에 일어난 모든 일은 불안 때문이었다. 나는 소냐를 두려워했다고 생각한다. 작고 특이한, 말이 없고, 나와 잠자리도 하지 않던, 나를 큰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만 보던,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어쩌면 내가 결국 사랑했을지 모를 아이와 갑작스럽게 가까워진 삶의 가능성이 불안해졌다.

나는 소냐 없이 혼자 지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뜻밖에도 그녀가 내게 중요하다고 여겨졌고, 그녀가 보고 싶었다. 나는 그녀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고, 한편으로는 영원히 멀리 사라졌으면 했다.

  

 

유디트 헤르만 『여름 별장, 그 후』中

「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