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12.03 카프카,「첫 번째 시련」
카프카,「첫 번째 시련」 / 중얼중얼
posted by 얄롱얄롱 2013. 12. 3. 13:24

카프카의 첫 번째 시련

 

 

1. 땅에 발붙일 수 없는 예술가

예술가란 땅에 내려오지 못하고 낮이나 밤이나 그네 위에 머물러야 하는 곡예사 같은 존재다. 반면에 예술을 그저 취미로만 즐기거나 아니면 예술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은 땅에 발붙여서 살아간다. 그들은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러 우르르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는 와중에도 예술가는 그네 위에 홀로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예술가가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왜 즐거워하는지 또는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 항상 지켜보아야하는 관찰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땅에 발을 붙이고 살 수 없는 존재다.

 

2. 곡예사는 왜 울었을까

소설 속 곡예사는 삶과는 유리된 채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이 세계에서 곡예사는 자신의 예술에만 전념한다. 하지만 곡예사는 자주 흥행주를 따라 공연을 하러 다녀야 했고, 땅으로 내려와 삶과 부딪혀야 하는 여행을 할 때 마다 고통을 느꼈다. 어느 날 곡예사는 여행 중에 흥행주에게 부탁을 한다. 이제 자신은 한 개의 그네만 타지 않겠다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그네를 가져야겠다고. 흥행주는 흔쾌히 두 개의 그네를 준비해 주겠다고 말을 한다. 그러자 곡예사는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그는 무엇 때문에 울음을 터트린 것일까?

천장 높은 곳에서 하나의 그네를 타는 것조차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힘든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동시에 두 개의 그네를 타는 것은 어떨까.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뼈를 깎는 고통을 인내해야만 할 것이다. 그럼에도 곡예사는 더 이상 한 개의 그네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이것은 예술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그의 성격 때문이다. 곡예사는 앞으로 자신이 겪어야 할 고통스러운 미래를 감지했던 것 같다. 자신은 두 개의 그네를 타야만 하고, 갖은 노력 끝에 두 개의 그네에 익숙해지더라도 그의 예술적 욕망은 세 개의 그네를 원할 것이다. 그네 타는 기술을 모두 익힌다 하더라도 곡예사는 그네에서 내려올 수 없다. 기술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곡예사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절대로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그네에서 영원히 내려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곡예사의 울음은 탄생의 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태아가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크게 우는 것처럼 말이다. 태아는 출산 전 산모와 일체의 상태로 자란다. 곡예사가 한 개의 그네를 가지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살았듯이. 태아는 성숙해지면 자궁을 뚫고 나오게 된다. 태아는 엄마의 산도를 따라 밀려 나오는데, 이때 태아는 온몸이 수축되기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던 태아에게 바깥세상의 충격은 엄청난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탄생은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성스럽거나 긍정적인 의미의 탄생이 아니다. 태아에게 탄생은 어쩌면 고통의 시작일 것이다. 자의적으로가 아니라 타의적으로 세상에 나와야하고 성장을 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곡예사 또한 그네 위에서의 삶을 자신의 의지로만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그의 성격 때문에 그네를 타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고, 하나의 그네에는 만족할 수 없어 더 많은 그네를 타며 끝없는 성장을 해야만 한다. 이것을 처음 인식하게 된 곡예사는 태아처럼 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 곡예사의 본심

그의 울음은 또한 복합적인 감정에서 비롯되었다. 곡예사는 흥행주가 자신을 위해 그네를 준비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을 말려주길 바랐을 것이다. 한 개의 그네를 타는 것도 힘든 일이니 두 개의 그네는 생각도 하지 말라고 화를 내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흥행주는 곡예사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꼼짝없이 곡예사는 두 개의 그네를 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흥행주도 곡예사의 고통스런 앞날에 대해 알고 있었다. 곡예사가 그네 숫자를 계속 높이지는 않을지 그것이 곡예사의 존재를 위협하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그리고 잠든 곡예사에게서 첫 주름살이 지기 시작한 것을 본다. 이 주름살은 곡예사가 예술의 완벽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처음 인식함을 뜻한다. 또한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기술을 연마하게 될 곡예사의 예술세계가 성숙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주름은 관록의 상징이라고도 이야기하지 않는가. 자신이 완벽을 추구해야하는 예술가임을 인식하고 그 고통을 감내해내는 예술가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습관 때문에 예술을 추구하던 예술가 보다 한 차원 높은 예술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