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 中道 ]
①중용(中庸)의 도. ②가운데 길. ③일의 중간. ④서울을 중심으로 하여 국경과 중간지점에 있는 도(道).
* 용례
㉠하루를 걸러서 종장을 열고 시무를 시험하였는데, 책의 글제에 이르기를, “임금은 이르노라. 옛날 제왕이 법을 세우고 제도를 정함에 반드시 시의에 인하여 지치를 융성하게 하였으니, 당우와 삼대의 치평을 이룬 도를 들을 수 있는가? 정일집중은 요•순•우가 서로 준 심법이고, 건중건극은 상탕•주무가 서로 전한 심법인데, 정이니 일이니 하는 것은 그 공부가 어떻게 다르며, 집이니 건이니 하는 것은 그 뜻이 어떻게 같은가? 중이라고 말하면 극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고, ‘극’이라고 말하면 중에 지나는 것 같으니, 두 가지를 장차 어떻게 절충할 것인가? 읍량하고 정벌하는 것과 문과 질을 손익하는 것이 일과 때가 다른데, 함께 다스림으로 돌아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한나라와 당나라 이후에서 송나라•원나라에 이르기까지 대마다 각각 다스림이 있는데, 중도에 합하여 말할 만한 것이 있는가?…” 하였다. ; 間一日 開終場 試時務 策題曰 王若曰 古昔帝王 立法定制 必因時宜 以隆至治 唐虞三代 致治之道 可得聞歟 精一執中 堯舜禹相授心法 建中建極 商湯周武 相傳心法 曰精曰一 其功何異 曰執曰建 其義何同 謂之中則未至乎極 謂之極則似過乎中 二者將安所折衷歟 揖讓征伐 文質損益 事與時異 而同歸于治何歟 漢唐以降 迄于宋元 代各有治 其有合乎中道 而可述者歟… [태종실록 권제13, 17장 뒤쪽~18장 앞쪽, 태종 7년 4월 18일(임인)] ㉡궁정에서 옥책을 발부하는 의식.…통사사인이 책사와 부사를 인도하여 배위로 돌아간다. 전의가 ‘재배’라고 하면 책사와 부사 이하 문무백관들은 모두 재배한다. 통사사인은 책사와 부사 이하를 인도하여 밖으로 나간다. 협률랑이 휘를 들어 주악을 시작하면 절을 든 자가 앞서고 조책과 인수를 든 자가 다음 차례로 중도를 통하여 문밖으로 나간다. 절을 든 자가 보자기를 도로 싼다. 책사와 부사가 정문으로 나간 다음 휘를 눕히면 주악이 멎는다. ; 臨軒發冊…通事舍人引冊使副 還拜位 典儀曰再拜 冊使副以下文武百寮凡在位者 皆再拜 通事舍人引冊使副以下出 恊律郞擧麾樂作 持節者前導 持詔冊璽綬者以次 由中道出門 持節者加節衣 使副並自正門出 偃麾樂止 [고려사 권제65, 19장 앞쪽~21장 뒤쪽, 지 19 예 7 책왕비의] ㉢지난해부터 금나라 사람들이 병란과 관련하여 곡식이 고갈되었으므로 저마다 앞을 다투어 보물을 가지고 와서 의주•정주 관문 밖에 미곡을 교역하여 가는데 심지어는 은 1정으로 쌀 4•5석을 바꾸게 되었다. 그러므로 장사꾼들이 다투어 가면서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하여 나라에서 아무리 형벌을 엄격하게 하고 재물을 몰수하여도 탐오가 끝이 없고 밀무역이 계속되었다. 금나라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관에 와서 책망하기를 왜 전날의 우호관계를 버리고 곡식을 내겠다는 통고를 하지 않느냐 라고 하면서 10여 인을 납치하여 갔다. 그러나 잡혀가던 사람들은 도중에서 탈출하여 돌아왔다. ; 自去年 金人因兵亂資竭 爭賫珍寶 款義靜州關外 互市米穀 至以銀一錠 換米四五石 故商賈爭射厚利 國家雖嚴刑籍貨 然猶貪瀆無厭 潛隱互市不絶 金將率兵 到關責云 何棄舊好 不通告糶乎 乃擄十餘人而去 中道脫還 [고려사 권제22, 6장 앞쪽~뒤쪽, 세가 22 고종 3.윤7] ㉣식년의 정안은 중앙과 경기도는 8월 그믐 이내로, 중도는 9월 그믐 이내로, 원도는 10월 그믐 이내에 각기 마감하여 상송한다. ; 式年正案 京中京畿則八月晦日內 中道則九月晦日內 遠道則十月晦日內磨勘上送 [신보수교집록 형전 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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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 中庸 ]
유교 경전의 하나. ≪대학(大學)≫ㆍ≪논어(論語)≫ㆍ≪맹자(孟子)≫와 더불어 사서(四書)라고 불렸는데, 송(宋) 나라 때 주희(朱憙)가 ≪예기(禮記)≫ 49편 중에서 ≪대학≫과 ≪중용≫을 떼어내어 ≪논어≫ㆍ≪맹자≫와 함께 사서라고 이름 붙인 데서 연유함.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저작이라는 설과 진한(秦漢) 시대의 어떤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설, 그리고 자사의 저본을 바탕으로 후세의 학자들에 의해 가필되어 완성된 것이라는 설 등이 있어 아직 유력한 정설이 없음. ≪중용≫을 흔히 유교의 철학개론서라 일컫는데, 그 이유는 유교의 철학적 배경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임. 신라 원성왕 4년(788)에 관리등용법인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태학(太學)에 설치할 때 그 과목 중에 ≪예기≫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삼국 시대에 ≪예기≫의 한 편으로서 ≪중용≫을 접하게 된 것으로 추측되며, 그 뒤 고려 말 정주학(程朱學)을 수용한 이후에는 사서의 하나로 ≪중용≫을 매우 존숭하기에 이르렀음. 권근(權近)은 사서에 구결(口訣)을 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음.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모든 유학자들이 ≪중용≫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성리학이 바로 ≪중용≫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임.
* 용례
공자의 집에 어진 손자가 나서, 마침내 유림의 종이 되었네. 도가 혹시 전해지지 못할세라, 밤이나 낮이나 크나큰 근심. 힘써 그 조부의 본을 받아, 차분하고 자상하게 시종 살폈네. 글을 지어 이 세상에 전수를 하니, 천지에 중용이 있게 되었네. 치우치지 않고 또 기대지 않아, 하늘과 땅 사이에 꽉 들어찼네. 천인이라 성명이라 잠융의 즈음, 성인의 참 공부를 볼 수 있구려. 이 도가 어느 땐들 사라지리요? 묘한 이치 궁극하기 어렵고, 일치고 없는 것이 없어, 광대에다 종용까지 겸비하였네. 세상 사람 그 누가 실천을 했나? 자양 주선생을 나는 보았소. 서문을 지어 그 머리에 실었으니, 책을 펴면 기운이 왕성하구려. ; 孔門有賢孫 乃作諸儒宗 慮道或不傳 日夜憂 孜孜體乃祖 安詳審始終 著書傳斯世 天地有中庸 不偏復不依 兩間塞而充 潛瀜天性際 可見聖人工 此道何時歇 妙理難可窮 凡事無不有 廣大兼從容 世人誰踐履 我見紫陽翁 作序冠其篇 開卷氣蔚茺 [청장관저서 영처시고 경서 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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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 [ 中立 ]
명사
1 .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공정하게 처신함.
- 중립 노선
- 중립을 지키다
- 같은 말도 말하기에 달렸지만, 난 시원해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중립이지.
2 . 국가 사이의 분쟁이나 전쟁에 관여하지 아니하고 중간 입장을 지킴.
- 중립 국가.
- 인도네시아는 외교적으로 비동맹 중립 노선을 지켜 왔다.
- 1954년 콜롬보 회의 이후 비동맹 중립 세력을 결속하려는 움직임이 처음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