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돈 조반니 감상 - 인물별 욕망과 복수를 중심으로 / 중얼중얼
posted by 얄롱얄롱 2012. 11. 20. 17:24

<괴테시대의 문학>

오페라 돈 조반니 감상 - 인물별 욕망과 복수를 중심으로

  

 

1. 돈 조반니

   돈 조반니를 보고 나는 그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우리는 욕망을 추구하면서 살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까지 초월해서 욕망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사랑을 좇기는 하지만 그 사랑은 현실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

반면 돈 조반니는 치마만 두른 여자라면 모두 사랑한다. 얼마나 대단한가. 예수에 버금가는 박애주의자다. 그렇기 때문에 돈 조반니는 여자들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잘생기고 능력 있기 때문은 물론이요. 여자의 외모가 어떻든, 여자가 어떤 신분을 가졌든지 모두 사랑해주기 때문이다.

   그에게 윤리를 어기고 살인을 저지르는 일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죽음까지 초월하는 인물인데 살인쯤이야. 석상으로 돌아온 기사장이 그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회개하라!” “싫다.” “회개하라!” “싫다.” “회개하라!” “싫다.” 돈 조반니는 세 번이나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죽음 앞에서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처럼 끝까지 자신의 욕망만 추구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며, 여자를 무조건적으로 또 무제한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는 내심 그가 부럽기도 하다.

 

2. 레포렐로

   사실상 돈 조반니 보다 더 나쁜 놈은 레포렐로 같다. 주인을 싫어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돈 조반니를 파멸로 이끌고 가는 데 제일 큰 역할을 한다. 그는 주인님 뒷담화에 아주 능통하다. 돈나 엘비라에게 돈 조반니가 사랑했던 여인들의 명단을 읊는 아리아는 이 오페라의 별미다.

   레포렐로는 오늘날 현대인의 전형이다. 귀족이 되어 화려하게 살고 싶지만 의지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기의 최고 이익만 노리는 이기적인 인물이다. 특히 돈 조반니의 옷을 입고 주인 행세를 하는 레포렐로의 행동은 오늘날 명품으로 치장하고 만족감을 느끼는 현대인들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레포렐로가 돈 조반니를 죽음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신분제를 깨기 위한 능동적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돈 조반니가 죽자 레포렐로는 이렇게 말한다. “더 좋은 주인을 찾아보겠다.” 레포렐로는 신분제를 벗어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체제 안에서 어떻게든지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는 체제에 순응해버리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대변한다.

 

3. 돈나 안나

   나에게는 돈나 안나가 제일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돈나 안나를 보고 있으면 계속 이런 물음이 생긴다. 돈나 안나는 정말 오타비오를 사랑한 것일까? ‘돈나 안나는 돈 오타비오를 절대 사랑한 적이 없다. 돈나 안나는 돈 조반니를 열렬히 사랑했다.’라는 교수님의 말에서 나는 힌트를 얻었다.

   그녀가 돈 조반니를 침실로 들인 행동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돈 조반니를 약혼자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건 여지없는 변명 같아 보인다. 즐길 건 다 즐긴 후에 착각했다니. 돈나 안나를 보면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왜 돈 조반니를 사랑한다고 인정하지 못하니! 집안 분위기가 엄격하기 때문일까. 기사장의 딸이라서?

   그녀는 돈 조반니를 사랑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돈 오타비오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돈 오타비오가 자신을 사랑해주기 때문이다.

   여자란 사랑받는 것 자체를 사랑한다. 열망 받는 것을 열망하고 바람의 대상이 되는 것을 바란다.[각주:1] 그 모든 것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돈 오타비오는 돈나 안나를 필요로 했다. 돈나 안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돈 오타비오가 필요했다. 하지만 원했던 것은 돈 조반니였다. 그래서 그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녀를 보면 내 이야기가 떠오른다. 고등학생 때 나는 생애 첫 사랑을 하고 있었다. 나는 죽을 만큼 힘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친구를 사랑하지만 그가 나를 사랑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에게 고백할 용기도 없어서 나는 혼자서 끙끙대기만 했다. 나는 그가 없어지길 바랐다. 죽길 바랐다. 그가 없는 고통 보다 사랑하는 고통이 더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돈나 안나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녀는 똑똑한 여자다. 감정 보다는 실리를 따진다. 돈나 안나가 돈 조반니에 대한 사랑을 인정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돈 오타비오의 약혼을 깨야 하고, 아버지에 대한 딸의 의무도 져버려야 한다. 그녀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돈 조반니를 제거하고자 했다. 복수는 사랑의 다른 형태다. 돈나 안나가 돈 조반니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이런 것이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만 인정할 수 없어. 그러니까 없어져버려.”

 

4. 돈나 엘비라

   돈나 엘비라는 복수의 화신이다. “그 놈을 부숴 버리고, 심장을 파내고 싶구나.” 그녀가 울분에 차서 부르는 이 복수의 아리아를 들으면 섬뜩할 정도다.

   그녀가 돈 조반니를 사랑했다는 것에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녀가 돈 조반니의 심장을 파내고 싶어 하는 이유는 돈 조반니의 뜨거운 심장, 즉 진실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돈 조반니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더라도 그녀는 그를 미워할 수 없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돈나 엘비라는 베르터와 가장 닮은 인물이다. 무엇보다 감정이 중요하다. 사랑한다는 감정 말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돈 조반니가 어디 한 여자만 사랑할 인물인가. 돈 조반니가 지옥으로 떨어지고 그녀는 수녀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돈나 엘비라의 심장은 이미 돈 조반니에게 주었으니 다시 뜨겁게 타오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돈나 엘비라가 돈 조반니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이런 것이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아무도 못 가져! 죽여서라도 내가 가지고 말 거야”

   

5. 돈 오타비오

   돈 오타비오가 돈 조반니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오로지 돈나 안나 때문이다. 돈나 안나에 대한 이런 그의 사랑을 순수하다고 해야 하나? 글쎄…….

   돈 오타비오도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다. 돈 오타비오에게 욕망의 결실은 ‘결혼’이다. 그저 돈나 안나를 소유하고 싶은 것이다. 그는 돈나 안나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느냐 하는 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구구절절 늘어놓지 ‘너는 나를 사랑해?’라고 물어보지는 않는다. 그에게 복수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돈나 안나를 성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아버지는 잊으시오. 당신에게는 아버지 같은 내가 있지 않소.” 위로는 못할망정 부친상을 당한 약혼자에게 할 말은 아니다.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인다. 돈 오타비오는 사랑을 받고 싶기 보다는 돈나 안나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아버지의 자리를 꿰차고 싶어 하는 것 같다.

   

6. 쩨를리나

   오늘날에는 쩨를리나 같은 사람을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꽃뱀.’

   쩨를리나가 만약 귀족 계급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녀는 돈 조반니 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가장 큰 약점은 농부의 딸이라는 신분이다. “촌구석에 있을 인물이 아니다. (근사한 별장을 가리키며) 결혼하자”라고 돈 조반니가 꼬시자 쩨를리나는 금세 넘어가고 만다. 그러면서 마제토에게는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자비를 구한다. 쩨를리나는 여자 레포렐로다. 기회주의자.

   그녀는 자신이 매력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마제토를 구워삶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힐 정도다. 돈 조반니에게 실컷 얻어맞은 마제토에게 “사랑하는 사람아, 만일 당신이 내 말을 들으면 나는 너에게 굉장한 치료를 해줄 수 있어. 그런 치료법이 뭔지 알고 싶겠지? (가슴에 손을 대며)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껴봐.”라고 구슬리는데 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본받아야겠다.

   

7. 마제토

   이 작품은 1789년 일어났던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선취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돈 조반니가 프랑스 혁명의 이념,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한다면 마제토는 혁명을 주동했던 시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마제토가 사람들을 모아 돈 조반니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는 것은 귀족 계급에 대한 반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이 행동은 마제토 개인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는 쩨를리나를 뺏어간 돈 조반니에게 질투를 참지 못한다. 자신의 질투를 이기지 못해 “바람둥이, 강도 같은 여자야. 너는 항상 나를 괴롭혔어.”라고 쩨를리나를 욕하면서도 그녀의 한 마디면 사르르 녹아버린다. 돈 조반니에게 얻어맞은 마제토는 쩨를리나에게 말한다. “나 여기, 여기, 여기 맞았어. 아파. 호~해줘” 하는 모양새가 유치하기 짝이 없다.

   

8. 기사장

   기사장은 돈 조반니의 도덕적 타락에 대해서 응징하는 인물이다. 돈 조반니는 자유로운 인간이었지만, 사실 극중에서 그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한계는 상대적 자유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행해져야 한다. 개개인의 자유가 충돌하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에는 윤리와 관습·규율이 있다. 석상은 이런 사회를 유지시키는 힘들을 상징한다.

   개인적으로 오페라 속의 석상은 아쉬운 점이 많다. 관객석에서 등장하는 것은 참신했지만 효과적이지 못했다. 그저 깔끔하게 차려입은 기사장이지 전혀 석상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석상의 매력은 그로테스크한 면에 있다. 죽은 사람이 석상으로 나타나서 징벌을 가하는 기괴함 말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영화 〈돈 조반니〉의 석상이 더 멋졌다. 흰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높은 곳에서 돈 조반니에게 명령하는 석상은 그로테스크함 그 자체였다.

 

 

 

참고 DVD : 임선혜님이 쩨를리나 역으로 나온 오페라. 정확히 이름을 모르겠다.

 


돈 조반니 (2010)

I, Don Giovanni 
7.5
감독
카를로스 사우라
출연
로렌조 발두치, 리노 관시알레, 에밀리아 베르지넬리, 토비아스 모레티, 엔니오 판타스티키니
정보
드라마, 시대극 | 이탈리아, 스페인 | 120 분 | 201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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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조반니

저자
신영주 지음
출판사
음악춘추사 | 2004-05-30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
가격비교

  1. 프레드릭 포사이드,「돌아오지 않는다」에서 발췌. [본문으로]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읽고 / 중얼중얼
posted by 얄롱얄롱 2012. 11. 13. 10:09

<유럽사회와 문화>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읽고

 

 

  그러니까 나는 제목에 완전히 낚였다. 이 책의 제목은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 아니라 지식인을 향한 독설이 되어야 맞을 거다. 작가는 이 책에서 당신은 진정한 지식인인가? 당신이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지식인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지식인이 아니다라는 독설을 우리에게 퍼붓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은근하게 말하긴 했지만, 이 책의 제목은 명백한 반어다.

우리가 생각하는 지식인과 사르트르가 말하는 지식인은 다르다. 일반적으로 지식인이라고 하면 가방 끈이 긴 사람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르트르가 말하는 지식인이란 지식을 많이 소유한 사람이 아니다. 진정한 지식인이란 자기 자신 속에서, 그리고 사회 속에서 지배 이데올로기 사이에 벌어지는 대립을 깨닫고, 모든 권력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비판적 지식인이 우리나라에 몇이나 될까?

나는 책을 읽으면서 너무 놀랐다. 분명 이 책은 사르트르가 1965년에 한 강의 내용인데, 오늘 날 우리나라 사회를 너무나 잘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21세기를 미리 내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현재의 교육제도, 대학제도는 사르트르가 말한 그대로의 방법으로 지식인을 만들고 있다.

실천적인 지식인은 위로부터 모집된다.’ 맞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비추어보면, 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들을 육성한다. 기업이 통계에 관한 전문가가 필요하다 하면 우리는 통계학을 필수교양으로 이수해야 한다. 돈이 되는 학문, 이공계통은 육성하고 케케묵은 인문학을 포기하도록 강요한다. 대학의 주인인 학생들에게 아주 쉽게 징계 처벌을 내리면서 사람이 미래다라는 뻔뻔한 광고를 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고객이 미래다겠지.) 그런데도 공부 좀 했다 하는 대학생들은 그런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상부구조의 관리가 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나는 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밑줄을 팍팍 쳐가면서 책을 읽었다. 나는 밑줄 옆에 내 전 남자친구 이름을 적었다. (물론 나의 이름도 적었다.) 전 남자친구는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결코 그가 지식인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을 것이다. 그는 사르트르가 말하는 실천적인 지식을 가진 전문가일 뿐이었다. 그는 휴머니스트였다. 인간은 평등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부는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라며 나에게 세상에 인문대학생만 남는다면 세계는 곧 멸망할 것이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게 해댔다. 참고로 그는 R.O.T.C.였다. 미군에 의한 베트남 침공을 진보,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고 주장하는 통에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그와 헤어졌다.

그렇지만 나는 그를 온전히 비판할 수 없다. 나 또한 그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어느 정도 중간층에 속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도움으로 대학을 와서 편하게 공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럴싸한 직업을 얻어 중간계급에 속할 것이다. 창피한 일이지만 나는 이번 학기가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지 않았던가. 공무원 정도면 먹고 살 걱정은 없겠지. 시험에 통과해서 즐거워하는 나를 막연하게 상상하며……. 선생님께서 첫 수업 때 하신 말을 들으며 나는 혼자서 계속 웃었다. 정말로 노량진에서 슬리퍼 끌고 다닐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프티부르주아 계급에서 나오는 게 맞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정말 먹고 살기에 급급한 사람들은 깊게 공부하고 사고 할 여유가 없다. 이 책만 봐도 그렇다. 누가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겠어.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이 책을 소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굳이 이렇게 어렵게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것은 사르트르 고도의 전략이 아닌가 싶다. 지식인은 어느 정도 공부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몸소 실천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과제가 아니었으면 나도 이 책을 꾸역꾸역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부를 많이 했다고 지식인이 되는 것은 아니며, 이 어려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진짜 지식인이 되는 것도 아니란 것이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3장 때문이었다. 작가는 지식인인가? 나는 나의 위치가 어디쯤일까 궁금했다. 작가는 지식인이 맞겠지. 그럼 나도 지식인? 나는 제대로 뺨을 한 대 얻어맞았다. 결국엔 나는 지식인이 되려면 멀고도 멀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더라.

한때는 언어의 순수한 미만 다룬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것은 사회를 보려고 하지 않는, 사회문제를 볼 의지조차 없는 나의 비겁한 변명이었다. 내가 쓰는 언어가 이미 사회성을 가지고 있는데 순수한 언어의 미가 어디 있을까.

실제로 작가들이 늘어놓는 것들은 다 거짓말이다. 나는 대학에 와서 어떻게 하면 거짓말을 더 그럴싸하게 만들까 하는 방법들만 배웠다. 더 훌륭한 거짓말을 하기 위해 다른 거짓말쟁이들이 늘어놓는 것들을 읽고, 이 정도면 나도 훌륭한 거짓말쟁이지 하며 자위했다. 그런데 나는 글을 쓰는 내내 죄책감이 들었다. 정작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아무 쓸모도 없는 일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작가란 관찰자’, ‘방관자. 그래서 작가는 비겁하다. 나는 내내 내가 비겁하다는 생각만 했다.

결국 나는 자기만족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다. 그나마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글을 쓰는 일이니까. 하지만 정말로 내가 자기만족 때문에 글을 썼다면 일기만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일기를 쓰지 않고 소설을 쓴다. 나는 누군가 내 소설을 읽어주길 바란다. 내 거짓말을 읽고 그 거짓말을 읽을 동안만큼은 그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 소설을 다 읽은 후에 그들이 내 거짓말에 공감하기를, 소설을 읽기 전과는 뭔가 변했다고 느끼기를 바란다.

작가는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주 뛰어난 거짓말쟁이다. 하지만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거짓말이 진리를 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글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쓴다는 행위가 적극적인 사회참여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글을 한 자 한 자 적는데 큰 책임감을 느낀다. 물론 나는 아직 작가도 아니고 지식인도 아니지만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정말 허투루 공부하면 안 되겠다. 스스로에게 창피하지 않은 대학생이 되어야겠다.

 

 

* 참고문헌

장 폴 사르트르, 박정태 옮김, 지식인을 위한 변명, 이학사, 2011


지식인을 위한 변명

저자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출판사
이학사 | 2007-10-3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지식인의 종말이 다가온다?언제부터인가 전 세계적으로 지식인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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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와 가위 바위 보 / 중얼중얼
posted by 얄롱얄롱 2012. 6. 25. 21:26

나는 그를 돈 조반니라고 하기로 했다. 꿈속에서 그는 계속 오빠였다.

 

수업시간이었다. 사람들이 여러 명 탁자에 앉아있었다. 나를 위협하는 것이 있음을 느꼈다. 그 순간 탁자에 앉아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변했다. 그의 눈이 녹색으로 빛났다.

 

광기! 그는 미쳤다!

 

사람들이 그를 피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도 등을 돌려 뛰어갔다. 문이 반쯤 열린 방이 보였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려 했지만 그가 너무 빨랐다. 애초부터 그의 표적은 나였을지 모른다. 나는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나의 왼쪽 목덜미는 그의 것이 되었다.

 

그는 나를 보며 실실 웃었다. 나는 그의 손에서 놀아나는 쥐였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가 나에게 놀이를 제안했다.

“나를 이기면 너를 놓아줄게.”

나는 그의 의도를 완전히 파악했다. 어떤 놀이라도 순순히 응할 생각이었다.

 

우리는 가위 바위 보를 하기로 했다. 나는 가위 바위 보에는 젬병인데……. 상관없었다. 내 운명은 가위, 바위, 보 셋 중에 하나일 테니까.

 

그는 손을 뒤로 빼어 감췄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가 숨긴 손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등 뒤에 거울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손가락은 모두 펴져있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재빨리 계산했다.

가위군!

 

그는 가위바위보에는 젬병이었다. 그의 엉거주춤 오므려진 손가락. 나는 웃었다. 이게 아니잖아요. 나는 그의 손가락을 하나씩 펴주었다.

 

내가 가위바위보에 이긴 것은 상관없었다. 내 왼쪽 목덜미는 그의 것이었기 때문에. 그의 거친 숨이 내 머리꼭대기에 앉았다. 나는 그의 의도를 완전히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그도 나를 완전히 파악했다.

그는 나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챘다. 여길 나가자고 했다.

 

 

 

“살해할 라이우스가 없다.” / 중얼중얼
posted by 얄롱얄롱 2012. 6. 1. 00:06

“살해할 라이우스가 없다.”


1. 아버지는 있으나 그 아버지가 라이우스가 아니다.

2. 아버지를 만나고 싶지 않다. 아버지를 찾을 능력도 없다.

3. 아버지가 있으나 보이지 않는다.


"살해할 라이우스(Laius)를 갖지 않은 오이디푸스(Oedipus)는 라이우스를 발명해 내야 한다."

- 롤랑 바르트 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