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문학'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12.05.05 카렌 두베,『폭우』
  2. 2012.05.05 마르셸 바이어,『박쥐』 1
  3. 2012.05.05 유디트 헤르만,「소냐」
  4. 2012.05.04 헤르만 헤세,『황야의 이리』
카렌 두베,『폭우』 / 책갈피
posted by 얄롱얄롱 2012. 5. 5. 00:58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케 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이리라.

- <창세기> 6장 17절

 

 

나쁜 날씨란 없다. 옷을 잘못 입은 것뿐.

- 영국 속담

 

 

악은 습한 곳에 깃들인다.

- 메리 올리비어 수녀

 

  

카렌두베, 『폭우』 서문

마르셸 바이어,『박쥐』 / 책갈피
posted by 얄롱얄롱 2012. 5. 5. 00:46

새벽녘의 정적을 가르며 목소리 하나가 터져 나온다.

"우선 안내 표지판을 세운다! 물렁한 땅을 골라 망치로 말뚝을 깊이 박아 넣는다! 있는 힘을 다해라! 표지판이 쓰러지면 안 된다!"

지휘관(여기서는 나치 친위대 또는 돌격대의 하급 직위로, 소집단의 통솔 책임자를 가리킴-역주)의 명령이 경기장에 울려 퍼진다. 완장을 두른 소년 몇 명이 지시에 따라 대열에서 달려나와 작업을 시작한다. 하나같이 귀 바로 위까지 깔끔하게 깎은 머리에 목 뒤를 면도해 짧은 털에선 윤이 난다. 참 짧게도 깎았다. 족보 있는 개들한테 하듯 꼬리나 귀 털을 잘라 다듬어 줄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완벽할 것이다. 요즘 노역에 동원되는 어린 소년들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휠체어가 다닐 수 있게 널빤지로 임시 도로를 만든다! 널빤지를 깔아 놓는 거다! 그렇게 해서 모든 장애자를 맨 앞줄까지 밀고 올 수 있게 한다! 비가 더 거세게 내려도 휠체어가 진창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한다!"

명령을 받고 있는 사람 외에는 꼼짝도 않고 서 있다. 축축하고 차가운 날씨지만 피로가 덜 깬 그림자들은 몸 한번 떨지 않고, 비에 젖은 갈색 제복 차림을 한 지휘관의 말 한마디 한마디와 일거수 일투족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다.

여섯 명이서 널빤지 도로를 따라 석횟가루가 담긴 수레로 흰 선을 긋는다. 맹인을 인도해 주는 개들이 뒤로 물러선다. 선 사이 간격은 육십 센티미터. 사람 어깨 넓이 더하기 개 한 마리 넓이. 소름끼치게 정확하다.

지금은 전시(戰時)다.

 

  

마르셸 바이어,『박쥐』, 현암사

유디트 헤르만,「소냐」 / 책갈피
posted by 얄롱얄롱 2012. 5. 5. 00:45

그녀를 내 집과 아틀리에에 들어오게 하고, 식탁이나 서류 무더기 사이에 앉게 하고, 사진을 현상하거나 작은 스케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소냐에게는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난 몰랐다. 그녀는 그녀 방식대로 나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아틀리에에 들어섰고, 박물관 관람객처럼 경외심을 가지고 내 그림을 보았고, 식탁에 앉을 때는 마치 알현(謁見)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 당시 내게는 모든 것이 의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그녀가 내게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주관이 강하고 고집이 셌기 때문에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도 않았다. 나는 소냐가 내 삶에 갈고리처럼 걸려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밤들 동안 그녀는 작고 피곤한, 그리고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듯 자기만의 특이한 방법으로 말상대가 되어주는, 내 곁에 앉아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내가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는 기분을 갖게 해주는 아이였다.

 

(중략)

 

그 뒤에 일어난 모든 일은 불안 때문이었다. 나는 소냐를 두려워했다고 생각한다. 작고 특이한, 말이 없고, 나와 잠자리도 하지 않던, 나를 큰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만 보던,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어쩌면 내가 결국 사랑했을지 모를 아이와 갑작스럽게 가까워진 삶의 가능성이 불안해졌다.

나는 소냐 없이 혼자 지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뜻밖에도 그녀가 내게 중요하다고 여겨졌고, 그녀가 보고 싶었다. 나는 그녀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고, 한편으로는 영원히 멀리 사라졌으면 했다.

  

 

유디트 헤르만 『여름 별장, 그 후』中

「소냐」

헤르만 헤세,『황야의 이리』 / 책갈피
posted by 얄롱얄롱 2012. 5. 4. 23:54
고통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모든 고통은 우리의 고귀함에 대한 기억이다.
...
 
그리하여 모든 예술 작품은 고통의 바다 위를
떠도는 소중하고 허무한 행복의 거품이 된다.
 
- 헤르만 헤세,『황야의 이리』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