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앨범』과 『응답하라 1994』비교 분석 / 중얼중얼
posted by 얄롱얄롱 2014. 1. 13. 10:53

<독일명작의이해>

 

솔로 앨범응답하라 1994비교 분석

- 두 작품 속의 대중 문화적 코드

 

 

 

 . 들어가는 말

. 솔로 앨범 vs 응답하라 1994

1. 응답하라 1990년대

2. 쿨하지 못한 지질한 주인공

3. 음반의 문학화와 시각화

4. 일상적 언어와 소재

. 나가는 말

 

   

. 들어가는 말

벤야민 폰 슈투크라트 바레는 독일의 문단을 이끌고 있는 신세대 작가다. 그는 음악 저널리스트, 음반사 프로덕트 매니저, 방송작가,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으로 활약했던 다방면의 경험을 살려 1998솔로 앨범Soloalbum을 출판했다. 이 소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30만부 이상의 발행부수를 기록했고 2003년에는 영화화되기도 했다. 기존의 무겁고 딱딱했던 독일 소설에 안녕을 고하며 1990년대 후반 팝문학 열풍을 문단에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그렇다면 2013년 현재 한국을 이끌고 있는 경향은 무엇인가. 한국에는 응답하라 열풍이 일고 있다. 응답하라 199420131018tvN 케이블 채널에서 처음 방송된 드라마다. 1994년 당시의 사회적 이슈, 소품, 패션, 음악, 사투리를 다양한 형식으로 재현해 기존 공중파 드라마와의 차별 점을 내보이며 선전하고 있다. 케이블TV 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으로 10%를 상회하는 평균 시청률을 내고 있다. 응답하라 열풍에 힘입어 시장에서는 복고풍 제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90년대에 발매된 음악이 리메이크 되며 순위권 차트에 오르는 등 안방극장을 넘어서까지 복고 신드롬이 불었다. 이 현상에 대해 한 언론은 대한민국이 집단 추억여행에 빠져들고 있다[각주:1]고 분석했다.

이 글은 서로 다른 장르의 솔로 앨범응답하라 1994가 공통점을 가진다는 점에서 출발했다. 두 작품이 공유하고 있는 지점은 첫째,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며 실제 사건을 내용에 쓰고 있다는 것. 둘째, 평범한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 셋째, 음반이라는 대중 매체를 문학으로 다른 하나는 드라마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 넷째, 욕설과 사투리 등 일상적 언어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두 작품 모두 대중 문화적 코드를 내용에 담고 있다. 이 대중 문화적 코드가 작품 안에서 새롭게 기능하고 있음을 밝히고 어떤 효과들을 내고 있는가를 분석해볼 것이다.

 

 

 

 

 

. 클럽 오아시스 vs 응답하라 1994

 

1. 응답하라 1990년대

두 작품은 다른 시기에 제작되었고 작품의 공간적 배경도 다르지만 시간적 배경은 1990년대라는 점이 유사하다. 솔로 앨범1996년 초부터 19971122일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응답하라 19941994년부터 2000년까지가 주 무대다. 그러나 시간적 배경의 유사점 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그 기간 동안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이야기에 삽입하여 시간적 배경을 간접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솔로 앨범을 보자. 카타리나가 아비투어를 끝내고 술에 취해 주인공에게 전화를 하는 시점이 이별한 후 세 달이 지난 후이니, 소설의 시작점은 19962월쯤이라 추측할 수 있다. 마지막 장에서 주인공은 오아시스 콘서트를 보고 호텔로 돌아와 인엑시스INXS의 보컬리스트 마이클 허친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마이클 허친스가 실제로 사망한 날짜는 19971122일이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오아시스의 새 음반이 발매되었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도 시간을 추측해볼 수 있다. 이외에도 소설 중반부에는 다이애나비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찰스왕세자와 이혼한 다이애나비는 1997831일 새벽 프랑스 파리 알마 터널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숨졌다.

마찬가지로 응답하라 199490년대 중반부터 있었던 사건 사고를 드라마의 소재로 이용한다. 북한의 김일성 사망, 삼풍백화점 붕괴, IMF 외환위기 등, 이 사건들은 이야기와 동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인물들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삼풍백화점에서 만나기로 한 성나정(고아라 분)과 칠봉(유연석 분)은 기적적으로 사고를 피하고, 의사인 쓰레기(정우 분)는 응급실에서 환자들이 실려 오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을 느낀다. 몇 년 뒤 IMF 외환위기로 인해 나정 아빠(성동일 분)는 야구 코치 일을 그만두게 되고, 성나정(고아라 분)은 증권회사로부터 최종합격 되었다는 연락을 받지만 회사가 부도났다는 소식을 듣고 좌절한다. 이렇듯 그 당시 실제 사건들은 세세하게 스토리 전개에 얽혀 들어가 있다. 일반적인 드라마에서는 시간의 경과가 배제되어 있는 반면 응답하라 1994는 사건들의 시간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두 작품 모두 팬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솔로 앨범의 주인공은 록 밴드 오아시스의 광적인 팬이다. 그는 팝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다. 그는 좋아하는 음악을 향해 열렬한 찬사를 보내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음악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의 생활은 팝 음악으로 점철되어 있다. 응답하라 1994에는 아마추어 대학 농구팀의 빠순이[각주:2] 성나정(고아라 분)과 그 당시 문화 대통령이라 불렸던 서태지를 좋아하는 조윤진(도희 분)이 등장한다. 드라마에는 서태지 팬들과 관련된 실화가 나오기도 한다. 서태지가 연희동에 거주하고 있을 당시 서태지의 팬들이 그 근처를 배회하다 검은색 차량과 보디가드를 보고 사진을 찍어댔다. 플래시까지 터뜨려 찍은 사진을 인화하자 사진에 엉뚱한 사람이 나타났다. 사진 속 인물은 서태지가 아닌 전두환 대통령이었다. 전두환 대통령 역시 연희동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태지 팬에게 이 실화를 들은 제작진은 이야기를 각색해서 드라마의 에피소드로 만들었다.

이렇게 허구의 스토리에 사실적 요소를 접목하는 것은 서사적으로 어떠한 기능을 하는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와 시청자는 소설과 드라마의 내용을 사실이라고 믿게 된다. 그들은 과거에 그 사건들을 직접 체험한 이들이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소설과 드라마는 그들에게 행복했던 추억이든 아픈 추억이든, 다시 과거를 상기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매개체가 된다. “독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 체험이 집단적 경험이며, 그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고 유사한 감정을 느끼며 결합된다고 확신함으로써 자신의 삶이 정당하거나 적정하다는 것을 확인받는[각주:3] 것이다.

 

 

2. 쿨하지 못한 지질한 주인공

두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어디에나 있을법한 그런 흔한 인물이다. 이때까지 소설과 드라마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신화적 인물들이 주인공을 맡아왔다. 홀로 사건을 극적으로 해결하는 천재적 주인공, 잘생긴 재벌집의 아들처럼 드라마는 주인공 캐릭터에서 유발되는 비현실성을 전제로 해왔다. 소설과 드라마가 전개되는 무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공간이었다. 소설을 읽는 독자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는 이런 스토리에 공감할 수 없었다. 재벌집 아들과 사랑에 빠지는 가난한 여자는 독자와 시청자에게는 공감의 대상이 아니라 개인적 욕망 투입의 대상이었다.

그에 비하면 솔로 앨범응답하라 1994의 주인공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때로는 지질해보이기까지 하다. 솔로 앨범의 주인공은 함을 강조하고 그에 따라 세상을 보는 시각은 다소 냉소적이지만 그의 실상은 지질하기 짝이 없다. 팩스로 여자 친구에게 이별통보를 받고 그녀를 잊지 못해 몇 날 며칠 우울함에 빠져 지낸다. 여자 친구가 없는 지루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빌트지에 나오는 벌거벗은 여자 사진을 모으기도 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늘어진 뱃살을 보며 다이어트를 하기로 마음먹지만 그도 쉽지는 않다. 모아놓은 돈도 없어 현금을 찾으러 가는 일은 난감하기만 하다.

 

3년 전부터 은행 창구에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 행원이 내 딱한 자금 사정을 보면서 이마를 잔뜩 찌푸릴 게 두렵기 때문이다. 지갑이 비면 현금인출기를 찾아간다. (중략) 현금인출기는 참 좋다. 물론 그 기계도 내 자금 사정을 보여줄 수 있지만, 난 절대로 그 옵션을 선택하지 않는다. 항상 얼른 비밀번호를 눌러버린다.”(S62)[각주:4]

 

헤어진 여자 친구 생일 선물을 사흘 내내 준비해서 스무 개가 넘는 선물을 상자에 가득 담아 소포로 보내지만 비웃음이 가득 담긴 전화만 받는다. 개그맨 유세윤과 프로듀서 뮤지가 만나 결성한 남성 듀오 UV의 노래 쿨하지 못해 미안해는 이런 솔로 앨범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은 것 같다.

 

정말 예쁘게 아름답게 헤어져놓고 / 드럽게 달라붙어서 너무 미안해 / 합의하에 헤어져놓고 전화해서 미안해 / 합의하에 헤어져놓고 문자해서 미안해 / 나만 울어 너는 웃어 나는 울고 너는 웃어 / 정말 비겁하지 나 이렇게 비겁하지 / 며칠전엔 0번으로 문자보냈어 / 그럼 알 줄 알았어 / 나도 0번으로 문자올 줄 알았어 / 근데 없어 486로도 보냈어 1004로도 보냈어 / No Cool I'm sorry / Cool 하지 못해 미안해 / No Cool I'm sorry / 하지만 넌 넌 So So Cool”[각주:5]

 

2010UV가 이 노래를 발표함으로써 함의 코드가 한국에서도 대두되었다. 이 노래가 시사하고 있는 점은 바로 이점이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현실적으로는 쿨하지 못하며 함을 강조하는 것은 실제로 쿨하지 못함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애인과 헤어지면 지난 일들은 깔끔하게 잊고 싶고, 불의를 보면 맞서 싸우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현실에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나오던 영웅도 천재도 없다. 현실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신화적 주인공은 등장하기 힘들다.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든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개천에 사는 물고기는 평생 개천에서 살 수밖에 없다. 노력 보다 태생적 부()가 인생을 결정한다. 이미 사회는 자본주의에 길들여져 있고, 모든 것이 상품화되었다. 뛰어나지 못하면 상품성을 잃는 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현실에는 채무만 가득 앉고 있는 지질한 주인공만 있을 뿐이다.

 

눈곱만큼, 말 그대로 눈곱만큼이라도 돈을 버는 즉시, 은행에서는 대출 한도를 마구 늘려준다. 그러면 우리는 자본주의에 길들여지고, 머잖아 은행은 절대로 끝나지 않을 할부상환금을 들이밀며 우리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인다. 이제 일상은 채무 상담과 채무 상환을 위한 계획들로 도배된다. 어쩌면 배 째라.’ 하고 내빼는 게 삶의 콘셉트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우린 돈을 쫓아 달리고, 은행은 우릴 뒤쫓아 달려온다. 그러나 그들에게 붙잡히면, 그걸로 끝이다.” (S70~71)

 

그렇기 때문에 함 보다 지질함의 코드가 오늘날 우리의 정서와 맞는 것이 아닐까. 여전히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내세우는 소설들과 드라마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통속 소설 또는 막장 드라마[각주:6]로 치부된다. 죽지 않는 오디세우스는 사라졌다. 이제 지질한 주인공들이 대세가 되었다.

이전에는 독자와 시청자가 신화적 주인공에 욕망을 투입했다면 오늘날에는 평범한 주인공으로부터 공감을 얻는다. “독자에 관한 최근 연구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독자들이 작품의 주인공, 혹은 종종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다는 점이다.”[각주:7] 작품의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독자 또는 시청자는 작품에서 자신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관찰할 수 있다. 작품을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3. 음반의 문학화와 시각화

두 작품은 외적구성의 측면에서도 동일성을 띤다. 우선 솔로 앨범은 제목 자체가 음반의 의미를 가진다. 솔로 앨범은 사전적으로 그룹 멤버가 그룹과는 별도로 혼자서 만들어 완성한 앨범. 대개의 경우 개인 이름으로 나오는 앨범[각주:8]을 뜻한다. 이 책 자체가 앨범이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하며 동시에 카타리나와 헤어져 솔로가 된 주인공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은 크게 음반처럼 A면과 B면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쪽수를 표시하는 부분에는 빠르게 감기(▶▶)’빠르게 되감기(◀◀)’가 붙어 있다. 각 장의 제목은 밴드 오아시스의 곡명이다. 스물여덟 개 장의 제목은 각 장 내용과 관련되어 있다. 이를테면, 두 번째 장 화내며 뒤돌아보지 말아요(Don’t Look Back In Anger)’는 카타리나와의 이별 후 주인공이 지난 사랑을 되돌아보는 내용이다. 여덟 번째 장 ‘Cigarettes&Alcohol’의 제목은 그녀를 잊지 못해 방황하는 주인공이 술에 취한 모습과 담배연기가 자욱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응답하라 1994각 화의 제목도 내용과 연결되어 있다. 그 제목은 대개가 노래 제목인데 그 중심 노래는 시퀀스의 주제가 된다. 예를 들어, 1서울 사람에서는 1994년 유행했던 드라마 서울의 달수록곡인 장철웅의 서울 이곳은을 시작 부분에 틀어준다.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 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고 있지만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해라는 노래의 가사는 지방 출신인 주인공들이 서울에 힘들게 적응해가는 과정과 잘 맞아떨어진다. 1화의 주된 내용은 이렇다. 대학에 갓 입학해 상경한 삼천포(김성균 분)는 지하철 2호선에서 환승하는 법을 몰라 한참을 헤맨다. 택시 아저씨에게 요금 사기를 당하고 좁은 서울 시내를 몇 시간 동안 뺑뺑 돈다. 하루 종일 걸려 도착한 하숙집에 자신보다 먼저 도착해있는 엄마의 정성이 담긴 이불을 보니 눈물이 핑 돈다. 이 드라마는 사람도 도시도 낯선 서울에서의 삶을 시작한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3화에서는 015B신인류의 사랑을 주제곡으로 해서 X세대의 문화, 주인공이 처음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기존 드라마에서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많았으나 이처럼 다양한 음악들이 드라마 각 화의 중심 주제로 사용된 경우는 전무했다. 시청자는 배경음악으로 듣고 드라마를 보면서 두 번 내용을 읽게 된다. 내용 전개에 음악이라는 대중매체를 활용하면서 시청자가 더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 음반을 문학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형식은 작가가 매체 사회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문학이 대중 매체에 대해서 문을 열어야 한다는 레슬리 피들러의 요구와 일치하는 것으로서, 요컨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각주:9]

 

소설에서도 가사를 인용하는 경우는 있었으나 형식적으로 음반을 형상화 한 경우는 없었다. 솔로 앨범에서는 음반뿐만이 아니라 신문의 문구들을 그대로 목록화 해서 나타내기도 한다. 이제 작가들은 대중 문화적 요소를 자유자재로 이용한다. 대중매체를 통해 소통을 매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도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4. 일상적 언어와 소재

솔로 앨범의 주인공은 옆에서 대화 하듯이 이야기하고, 그것은 문학 언어라기보다는 일기라는 느낌을 준다. 폭력적인 언어에서부터 아주 일상적인 언어가 소설을 채운다. 상품 광고나 록 밴드의 이름, 노래 제목이 소설 중간 중간에 튀어나온다. 그는 잘 다듬어진 진부한 상품 언어에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작가 슈투크라트 바레는 자신이 소설에 쓰는 일상적 언어에 대해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나는 단지 써 내려갈 뿐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걸치고 있는지, 언어는 어떤지, 규칙은 어떤지, 거래란 무엇인지. 일상에서 관찰되는 이 모든 것들은 퇴비로 만들어져야 한다.”[각주:10]

 

이런 작가의 말처럼 응답하라 1994의 인물들도 다듬어지지 않은 일상적 언어로 대화한다. 구수한 욕설과 다양한 지방 사투리는 드라마에 재미를 더하는 요소다. 다음은 5화에 삽입된 대사다. 서태지 팬인 조윤진(도희 분)이 서태지에게 직접 받은 꼬깔콘을 삼천포(김성균 분)가 먹으면서 일어난 장면이다.

 

 

정대만 : 니가 그것을 뭐단다 쳐먹고 지X이여. ~이 어처구니 없는 새X 좀 보소.

니 오늘 나한테 뒤졌어. 확 창자를 빼갖고 젓갈을 담가불랑께.

삼천포 : 뭔데 뭔데 또 와이라는데?

정대만 : 꼬깔꼰을 쳐먹어? 니가 니가 꼬깔콘을 쳐먹냐고.

, 이 꼬깔콘이 어떤 꼬깔콘인지 알고나 쳐먹냐. 이 염X할 새끼야.

삼천포 : 어떤 꼬깔콘인데? 도대체 아... 니한테 소중한 꼬깔콘이가? 

 

 

드라마는 이에 더해 1994년에 발매된 잡지와 오래된 물품들, 광고 영상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처럼 일상적 언어와 소재들은 독자와 시청자가 더 쉽게 작품에 빠져들 수 있게 한다. 또한 그 시절의 음악, 문화, 패션, 대중문화를 작품 안에 담으면서 작품은 문화적 산물을 기록하는 보관소로서의 역할도 하게 된다.

 

 

. 나가는 말

솔로 앨범과 같은 팝 문학이 대중 매체를 문학에서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될 점이 많다. ‘이러한 작품들을 기록물 이상의 예술로 볼 수 있는가.’, ‘오히려 문학의 상업화를 촉진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주제들은 아직도 끊임없이 논쟁 중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문학이 대중문화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응답하라 1994또한 대중적인 주제, 대중 문화적 소재를 사용해 1994년도를 살았던 시청자뿐만이 아니라 폭넓은 연령대의 사람들을 시청자로 끌어들였다. 더군다나 막장 드라마가 공중파를 장악한 가운데 작가의 기획력과 소재의 확장성을 보여준 드라마다.

지금까지 솔로 앨범응답하라 1994를 비교 분석하여 두 작품이 어떠한 방식으로 대중 문화적 코드를 사용하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단순한 기록물을 뛰어넘어 솔로 앨범』『응답하라 1994와 같은 대중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장르가 다른 이 두 작품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투박하게나마 매체의 상품화를 비판하기도 하고 언어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보이기도 한다. 가령, 솔로 앨범의 주인공은 빌트지의 자극적인 문구들을 오리며 시간을 때운다. 그 문구들의 나열은 단순한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언론 매체가 상업화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흥미로운 것이다. 이런 면에서 솔로 앨범응답하라 1994보다 발전할 더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두 작품의 내용적 측면에서는 저항문화의 특징을 발견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대중문화 그 자체를 고루하고 전위적인 엘리트문화에 대한 저항문화로 읽을 수 있다. 모든 문화들은 지나고 나면 그 의미가 퇴색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대중문화도 작품 그 안에 시대적 의미를 담는다면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1차 문헌

벤야민 폰 슈투크리트 바레 지음, 송소민 옮김, 클럽 오아시스, 나비장책, 2008

 

2차 문헌

노영돈·류신 외 지음, 독일 신세대 문학, 민음사, 2013

김창남 지음, 대중 문화의 이해, 한울아카데미, 1999

김창남 외 지음, 대중음악과 노래운동, 그리고 청년문화, 한울아카데미, 2004

베라 뉘닝, 안스가 뉘닝 외 지음, 장진원 외 옮김, 현대 문화학의 컨셉들, 유로, 2006

 

 

 

 

  1. 응답하라 1994 덕에… ˝아~옛날이여˝ http://bit.ly/1cXYmph [본문으로]
  2.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따라다니는 극성팬 중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 - 엔하위키백과 [본문으로]
  3. 노영돈·류신 외 지음, 『독일 신세대 문학』, 민음사, 2013, p103 [본문으로]
  4. 벤야민 폰 슈투크리트 바레 지음, 송소민 옮김, 『클럽 오아시스』, 나비장책, 2008 (앞으로 가로 안의 약호 S라 약칭한다. 옆의 숫자는 인용된 쪽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5. UV 노래, 뮤지(Muzie) 작사 작곡, 2010년 4월 16일 발매 [본문으로]
  6. 막장 드라마란 복잡하게 꼬여있는 인물관계, 현실상으로는 말이 될 수 없는 상황설정, 매우 자극적인 장면을 이용해서 줄거리를 전개해가는 드라마를 의미한다. 시청자들은 해당 드라마들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지만, 이들 드라마 중 대다수는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경우가 많다. - 위키백과 2013년 12월 현재 공중파 3사는 막장드라마가 접수했다. 사망예고제까지 등장했던 『오로라 공주』와 쌍둥이 자매가 얼굴이 바뀐다는 설정의 『루비반지』, 그리고 며느리 오디션을 보는 설정까지 등장한 『왕가네 식구들』. 『응답하라 1994』가 케이블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약진하는 데에는 이 드라마들이 한몫을 했다. [본문으로]
  7. 노영돈·류신 외 지음, 『독일 신세대 문학』, 민음사, 2013, p103 [본문으로]
  8. 삼호뮤직 편집부 지음, 『파퓰러음악용어사전』, 삼호뮤직, 2002 [본문으로]
  9. 노영돈·류신 외 지음, 『독일 신세대 문학』, 민음사, 2013, p228 [본문으로]
  10. 위의 책 재인용, p102 [본문으로]
다니엘 켈만,『세계를 재다』 / 중얼중얼
posted by 얄롱얄롱 2014. 1. 13. 10:47

 

 

1. 자연의 정복

알렉산더 폰 훔볼트(1769~1859), 그는 독일의 자연과학자이며 지리학자이다. 그는 중남미와 중앙아시아를 탐험하며 주변지리를 측량한 방대한 자료를 남겼다. 또 다른 인물 칼 프리드리히 가우스(1777~1855), 그는 독일의 수학자이며 물리학자로서 19세기 최대의 수학자라고 일컬어진다.

다니엘 켈만은 이 두 실존 인물에 상상력을 더해 2005세계를 재다 Die Vermessung der Welt라는 역사소설을 발매했다. 역사 소설류의 팩션이 그렇듯이 이 소설 또한 두 인물의 행적을 따라가며 그들의 인생을 추적하는데 여기에 허구의 스토리를 더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두 인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주의 깊게 관찰하며 읽어야 할 점이다.

훔볼트는 뭐든지 측정하지 않고는 입에 가시가 돋는 인물이다. 그는 시중에 나와 있는 지도는 믿지 않으며 정확한 지도를 위해 가는 길마다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측량한다.

 

훔볼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다. 안 돼요. 유감스럽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높이를 알지 못하는 언덕은 이성에 굴욕감을 주며 나를 불안하게 합니다.”(p.41)

 

훔볼트의 이런 이성에 대한 믿음은 그가 계몽주의와 고전주의를 관통하는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인간이 이성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통제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빛이라고요? 훔볼트가 말했다. 그것은 밝은 곳을 뜻하는 게 아니라 지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p.73)

 

이러한 지식에 대한 믿음과 연구 분야에 천착하는 집요함 덕분에 훔볼트는 유럽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이 되었다. 훔볼트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그를 멋진 위인으로만 그리고 있지 않다. 자연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믿는 그 자신도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는 미물에 지나지 않는 존재다. 모든 것을 다 측정해내겠다는 그의 포부도 발가락 피부에 파고들어간 벼룩과 사정없이 공격해대는 벌레들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해지고 만다.

훔볼트의 지식에 대한 믿음은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나아간다. 그는 정확한 지도가 식민지의 주거 지역 조성을 촉진할 수 있고 자연의 정복을 가속시키며 그 나라의 운명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p.202) 그러나 훔볼트가 만든 지도는 구대륙의 신대륙에 대한 지배를 확장시키고 식민지 노예제도 형성을 가속화시켰을 뿐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지식을 인간의 우월한 점으로 인식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비판한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자연을 이용하는 법[각주:1]이다. 이에 따르면 훔볼트가 축적한 지식은 자연을 이용하는 지식, 그것은 순수한 학문이 아니라 도구적 학문이다. 켈만은 그것이 훔볼트의 한계, 나아가 계몽주의 한계라고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2. 숫자에 대한 믿음

가우스는 육체적인 것 보다 정신적인 것이 인간을 규정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는 방 안에만 틀어박혀 오직 머릿속 사고로만 대수학의 기본 정리들을 증명하고, 천체역학을 연구했다. 그러나 누구 보다 뛰어난 두뇌를 가진 가우스도 치통 앞에서는 무너지고 만다. 이 대단한 수학 천재도 숫자로 개념화되지 않은 추상적 감정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수학적 머리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을 할 때에는 유용하게 쓰이지 못하나 보다. 그는 요하나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데 쩔쩔맨다. 첫 번째 부인과 일찍 사별하고 맞은 두 번째 부인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문적으로는 뛰어난 삶을 산 그도 가족을 부양하는 아버지의 역할은 잘 수행하지 못한다. 아들을 격려하고 싶지만 감정을 표현이 서툴러 오히려 뺨을 때리는 아버지인 것이다.

그런 점은 훔볼트도 비슷하다. 훔볼트에게 여자는 사랑과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측정의 대상이다. 그래서 봉플랑이 여자와 즐기는 사이에 그는 여자들 머리카락에 있는 이를 센다. 그가 봉플랑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훔볼트 자신이 육체적 욕구 표현에 서툴기 때문이다. 그런 그는 하나뿐인 형과도 사이가 좋지 못하다. 그는 형에게 쓰는 편지에 형제애가 풀 수 없는 수수께끼라고 언급한다.(p.33)

훔볼트가 믿는 유일한 것은 측정되어 숫자로 환원된 수치 결과다. 수의 완전성을 중요시한 가우스의 좌우명은 ()는 적으나 완숙하다였다. 그러나 그 두 명의 인물이 신성시했던 숫자, 과연 숫자는 객관적 산물인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숫자는 계몽의 경전이다[각주:2]라고 말한다. 계몽가들은 세계를 숫자로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계몽은 숫자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은 존재나 사건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훔볼트가 유령을 보고도 못 본 척 하며 보고서에 적지 않은 이유가 그것이다. 유령뿐만이 아니라 훔볼트는 그가 본 것들을 모두 기록하지 않았다. 항해 중 그는 바다괴물을 만나지만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기로 한다. 재규어를 만났을 때에도 그는 사실과는 다르게 기록을 한다. 기록자에게 선택되어 임의적으로 기록된 수치는 객관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계몽주의뿐만이 아니라 작가는 소설 전반에 걸쳐 인간의 이성을 우선시했던 유럽의 사조들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고 있다. 비인간적인 전체주의, 현학적인 고전주의. 그러나 그 비판의 시각이 신랄하거나 날카롭지 않고 오히려 유쾌하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조만간 이 모든 것들이 하찮은 일이 될 것이다. 기구를 타고 떠다니고 자장의 지침반에서 거리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한 측량 지점에서 다음 측량 지점까지 전기 신호를 보내 전기 강도가 떨어지는 정도를 보고 거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의 일들이 지금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 이 일을 해야만 한다.”(p.197)

 

가우스는 미래를 예감하며 자신이 하는 일이 나중에는 하찮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은 지금 이 일을 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계몽주의의 의의다. 시대는 자체에 한계를 내포하고 있지만 그 시대가 있지 않았더라면 오늘날도 없다. 훔볼트, 가우스 각자의 방법으로 세계를 재려했던 그 인물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우리도 없을 것이다.

 

 

다니엘 켈만, 박계수 옮김, 『세계를 재다』, 민음사

 

 

 

  1. Th.W.아도르노, M.호르크하이머 공저, 김유동 옮김, 『계몽의 변증법』, 문학과 지성사, 2013, p.23 [본문으로]
  2. 위의 책, p.27 [본문으로]
다니엘 켈만,『세계를 재다』 / 책갈피
posted by 얄롱얄롱 2013. 12. 3. 21:45

 

  • 소설을 쓴다는 것은 고귀한 일 같아요. 미래를 위해 현재의 덧없는 순간을 붙잡아 두는 최선의 작업으로 보입니다. 아하, 그렇군요. 리히텐베르크가 말했다. 훔볼트는 얼굴이 빨개졌다. 제 말은, 요즘 유행하는 것처럼 작가가 이미 지나간 과거를 배경으로 선택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시도라는 것입니다. (pp.26~27)

 

  • 훔볼트는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벌거벗은 구릿빛 여자의 몸 위에 올라탄 봉플랑의 벌거벗은 등이 보였다. 그는 문을 닫고 배로 달려갔다. 뒤에서 봉플랑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셔츠는 어깨 위에, 바지는 팔에 걸친 채 숨을 헐떡이며 봉플랑이 용서를 구했을 때에도 그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훔볼트가 말했다. 다시 한 번 이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의 공동 작업은 끝난 것으로 알겠소. 봉플랑은 달리면서 셔츠를 입고는 헐떡이면서 말했다.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 이해해 주기 힘든 일인가요? 당신도 남자 아닙니까! 인간은 동물이 아니오. 훔볼트가 말했다. 가끔은 동물일 때도 있습니다. 봉플랑이 말했다. 훔볼트는 칸트를 읽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프랑스인들은 외국 사람이 쓴 책은 읽지 않습니다. (pp.47~48)

 

다니엘 켈만, 박계수 옮김, 『세계를 재다』, 민음사

벤야민 폰 슈투크라트 바레, 『클럽 오아시스』 / 책갈피
posted by 얄롱얄롱 2013. 12. 3. 15:05

 

 

 

  • 3년 전부터 은행 창구에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 행원이 내 딱한 자금 사정을 보면서 이마를 잔뜩 찌푸릴 게 두렵기 때문이다. 지갑이 비면 현금인출기를 찾아간다. (중략) 현금인출기는 참 좋다. 물론 그 기계도 내 자금 사정을 보여줄 수 있지만, 난 절대로 그 옵션을 선택하지 않는다. 항상 얼른 비밀번호를 눌러버린다.(p.62)

 

  • 내 몰골이 너무 초라하고 비참하다. 얇은 셔츠에 비친 불룩 튀어나온 배. 다른 사람들 보기에, 이건 정말 테러 수준이다. 스포츠센터 전단지에는 반나체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빛나는 근육을 본 사람들로 하여금 부러운 생각이 들게 만들어 트레이너를 찾아가도록 꾀는 거다. 이게 다 섹스에 관련된 문제기 때문이다. 나도 당연히 그렇다. 하지만 그건 철저히 숨겨야 한다. (p73)

 

  • 눈곱만큼, 말 그대로 눈곱만큼이라도 돈을 버는 즉시, 은행에서는 대출 한도를 마구 늘려준다. 그러면 우리는 자본주의에 길들여지고, 머잖아 은행은 절대로 끝나지 않을 할부상환금을 들이밀며 우리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인다. 이제 일상은 채무 상담과 채무 상환을 위한 계획들로 도배된다. 어쩌면 배 째라.’ 하고 내빼는 게 삶의 콘셉트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우린 돈을 쫓아 달리고, 은행은 우릴 뒤쫓아 달려온다. 그러나 그들에게 붙잡히면, 그걸로 끝이다. (pp.70~71)

 

  • 다이애나 빈이 죽었다. 그저 자동차 사고로 죽었을 뿐인데 그녀에 대한 신격화가 이뤄지고, 그녀는 곧 마음의 왕비가 됐다. 두 사람이 죽은 게 아무 상관이 없는데, 사람들은 마치 다이애나의 죽음이 뭔가를 바꿔놓기라도 한 것처럼 군다. 텔레비전을 보니, 수많은 사람이 그녀 영전에 꽃다발을 바치다가 졸도한다. 나는 구역질이 나는 걸 참아가며, 열두 시간 넘게 계속되는 장례식 생중계를 시청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 여인은 단 한마디도 의미 있는 말을 남기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걸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날이 갈수록 다이애나는 위대해지고, 시신의 부패 정도가 심해지면서 경외의 수준도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변해간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혐의가 있는 시대적 현상이고, 특히 큰 잘못은 대중매체에 있다. 유리상자에 고이 모셔진 시체가 대중매체를 통해 소개되는 순간, 나머지 모든 문제들, 예를 들어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새로 제정된 법, 낡아빠진 법, 축구 관련 법, 연금 문제 따위는 모두 관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거다. (pp.251~253)

 

 

벤야민 폰 슈투크라트 바레, 송소민 옮김, 『클럽 오아시스』, 나비장책, 2008